日柱論
60갑자에 대하여
사주팔자와 운명의 관계
사주 감명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運命은 바꿀 수 있는 건가요?” 라는 질문입니다.
사주란게 태어나면서 정해지는거니까 운명도 결정되어 있는거 아닌가 하는 의문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처음엔 갖게 됩니다. 그러다 공부가 깊어지고 나름 사주 감명을 하고 실제 임상을 거치면서 각자 자기만의 개념을 갖추게 됩니다.
여기서 제가 가진 사주(四柱)와 운명(運命)에 대한 생각을 한번 정리하고 알려드릴 필요가 있어 글을 적어봅니다.
가장 먼저 운명이란 단어에 집중해 봅시다. “命”이란 단어는 사람이면 누구나 타고난 천명, 소명, 마땅히 해야할 일을 의미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위해 주어진 환경, 성품, 자질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運”은 무엇일까요? 뜻을 보면 운전하다, 흐르다 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명을 실현하기 위해 자라면서 각자가 겪는 여러가지 사건들, 일상들, 주변 사람과의 관계, 주어지는 환경과 고난, 시련에 대한 우리의 선택등 많은 변곡점의 총합이며 흐름을 “運”이라는 한 글자로 갈음한다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타고난 명을 어떻게 움직이고 흐름을 타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지가 “運命”이란것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보면 현재 내가 살아가는 지금 이시간의 모습은 우리에게 태어나면서 주어진 가정환경(부유함, 가난함 등)과 부모님, 일가친척, 천성이란 “命”을 가지고 자라면서 주어지는 여러가지 위기와 기회, 내가 겪어온 일련의 삶 에 있어 내가 선택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선택들은 멈춰있는것이 아니고 인과에 의해서 결정되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데 그것이 곧 “運”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타고난 “命”은 내가 선택할 수 없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마주치는 “運”은 그 변곡점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서 얼마든 바뀔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운명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타고난 명에 상관없이 주어진 운의 과정에서 자신에게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만 있다면 내 자신이 “운명”의 주인공이 되고 주인이 되어 내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사주, 역학, 명리의 목적은 이런 “운”을 선택하고 결정하는데 내 “명”과 비교해서 가장 최선의 시기가 언제인지를 알기위한 학문이라 할 수있고 사주감명은 이러한 여러 운의 흐름에서 가장 적절한 그 시기에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하는게 유리한지 함께 찾아보고 상담해주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사주, 역학이 갖는 의미는?
사주를 왜 궁금해 하는걸까요?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기쁜일, 슬픈일, 괴로운일 기타등등 많은 일들을 끊임없이 겪게됩니다.
나름 그때마다 각자 해결 방법을 나름대로 찾게되죠.
누군가는 게임으로, 누군가는 잠수로, 누군가는 다른 누구에게 풀어내는것으로 등등.
어떤이는 정신과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으면서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그럼 과거에는 어땠을까요? 몇백년전까지 갈것도 없이 불과 몇십년 혹은 지금도 우리 주변엔 그런 정신과 혹은 카운셀러의 역할을 했던 존재들이 있습니다.
절도 있고, 교회도 있고, 성당도 있고 심지어 요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신천지도 그 중 하나겠죠.
보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가면 무당들이 또 있습니다. 그러면서 神(대신이던 잡신이던 상관없이)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음양과 오행으로 대입해서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존재인 인간은 그를 둘러싼 그 기운들의 영향으로 인해 살아가면서 기쁜일도 슬픈일도 괴로운일도 다 겪게된다는 이론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토대로 운의 흐름을 잡아보고 거시적으로 혹은 미시적으로 살펴보는 학문으로 역학이 만들어졌습니다.
주역부터 따져보면 중국 주나라시대로 거슬러 가고 황제 시대까지 가면 우리 고조선의 단군신화 이전까지 거슬러 가기도 하죠.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삶에 내재되어 흐르는 사고방식에 익숙한 이론으로 위로는 임금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들까지 학문적 토대로 삶과 운명을 예측하고 길흉을 대비하는 학으로써 역학이 계승되어 내려왔기에 일종의 믿음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할 수도 있겠죠.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믿는다, 안믿는다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니 사주 풀이를 놓고 맞다 아니다 틀렸다고 다투는것은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이론을 받아들이고 그 풀이를 그 이론 체계에 맞춰서 들어보면서 자신의 속 마음을 사주를 풀어주는 선생에게 내 보임으로써 소통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지나온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면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듯 합니다.